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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문고리를 지우지 못하는 그림

권혁규 — 전시기획자

새로움과 속도에 중독된 듯한 오늘이다. SNS 쇼츠와 릴스처럼 짧고 강렬한 영상들이 빠르게 생성되고 소멸한다. 그러한 시각적 콘텐츠들이 그대로 일상이며, 감각의 기준이 되었다.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을 압축해 전달하는 디지털 풍경 속에서, 시선은 자극적인 장면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고, 손가락은 재빠르게 화면을 넘기며 잊혀짐을 가속화한다. 빠르게 특별함을 좇는 이러한 경험은 새로움을 찾는 소비의 경향에 그치지 않는다. 세상은 기념비적으로 변했지만, 실체는 조각난 듯하다. 디지털 이미지의 빠른 순환은 ‘기억이 세계를 형성한다’는 통찰을 역설적으로 왜곡한다. 아렌트(Hannah Arendt)는 행위(Action)와 기억(Remembrance)의 관계를 통해 인간 활동이 세계 속에 흔적으로 남고, 이를 기억하는 과정이 인간 존재와 공동체의 지속성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주장을 조금 무모하게 확장해보면, 행위가 기억되지 않을 세계는 지속될 없다. 여기서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기능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이 스스로 정체성을 형성하고 세계를 이해하며 재구성하는 기반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동시대의 디지털 환경은 기억의 이러한 본질적 기능을 해체하곤 한다. 특정 순간만이 인위적으로 강조되어 기억의 중심에 놓이며 나머지 순간들은 쉽게 사라져버린다. 이렇게 축소된 기억은 세계를 단면적이고 파편적인 방식으로 구성하며, 빈약하고 피상적인 형태로 변환한다. 아렌트는 역사와 기억의 행위를 통해 과거의 경험을 현재와 (재)연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한 방향성을 설정한다고 주장하지만, 오늘의 디지털 환경은 이러한 연결을 파괴하기도, 과거와 미래의 연속성을 단절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기억은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며, 세계를 구성하는 기반은 점차 희미해진다.

하지만 회의적 장면은 자체로 전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현실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는 사진과 영화 등의 매체가 드러내는 현실에 주목하며, 그를 통해 현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장이 열리고, 우리가 놓친 부분을 포착하며 다각적으로 바라볼 기회가 제공되기를 기대한다. 가장 빛나는 것, 빠른 것에 집착하는 오늘의 디지털 환경은 달리 말하면 이미 사라진 무엇을 성찰하는 일을 암시하고, 어쩌면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디지털 이미지의 빠른 순환 속에서 고민하고 사유할 틈을 잃어가고 있다 있지만, 속에 여전히 숨어 있는 틈이 분명히 포착된다. 허무함과 일시성을 직시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결국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빠르고 강렬한 영상과 이미지들은 일상적인 풍경을 새롭게 직시하며 평소 놓치거나 인식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전혀 다르게 드러낼 있게 된다. 비록 빠르게 변하고 소비되는 특성을 갖지만, 오히려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시각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현대인의 감각과 기억을 다시 환기하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크라카우어가 언급한 현실을 재구성하는 매체의 가능성처럼, 디지털 매체는 단순히 소비되는 이미지 이상의 순간을 기록하고, 감각의 변화를 유도하며, 디지털 환경 시공을 다르게 보려는 시도를 가능케 한다. 속도 속에서 기억과 경험을 재조합하고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적 경험을 만들어갈 모종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장황한 설명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현우의 회화를 말하기 위함이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무시하고 스쳐 지나갈 회화의 장면들은 특별한 사건적 서사를 갖지 않은 그저 존재한다. 이현우의 작품은 그러한 장면들, 고속도로, 슬레이트 지붕, 상가의 창문, 컨테이너, 터널, 매일 무심코 지나치는 아주 평범한 장면들을 포착한다. 심지어 작가는 바다나 하늘을 그릴 때조차 ‘멋진’ 절경이 아닌, 누군가에게는 심심하고 따분한 풍경을 그린다. 특별함을 좇는 성급한 마음을 비웃기에도 부족해 보이는 장면들은 넘치는 기념비들 사이에서 부서진 일상의 무심한 조각들을 그저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다시 말해, 작업은 평범한 것들을 다시 특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모순된 강박을 인지하게 하며, 소소한 장면들은 역설적이게도 평범함 속에서 진짜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처럼 다가온다. 작가는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잔상을 회화로 잡아내며, 특별함과 평범함 사이의 경계를 다시 묻는지도, 어쩌면 평범한 풍경을 환기하며, 디지털 시대의 무관심과 망각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순간들을 회화라는 형식으로 잠시나마 확인하려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작업 과정은 디지털 환경 일상적 경험의 순간, 앞서 언급한 망각의 순간을 관통하며 시작된다. 그러나 작업은 단순히 한순간을 포착하는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순간을 다시 바라보며, 본래의 속성을 다른 형태로 전환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작가는 핸드폰 카메라로 회화의 장면이 대상을 촬영한다. 과정은 특별히 정성 들이지 않는, 일종의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장면 캡처에 가까운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후, 작가는 회화로 옮기기 전에 사진을 크롭하거나 약간의 보정을 거쳐 원래의 순간을 조금씩 변형시킨다. 스냅사진은 즉각성을 담보하며 빠르게 순간을 포착하고 물리적·정신적 노력 없이 순간을 기록하지만, 작가는 바로 신속함을 돌려세운다.

‘빠른 이미지’를 ‘느린 이미지’와 교차 · 변환하는 과정은 찰나의 시각적 경험에 다른 시간성을, 경험을 부여한다.

이렇게 확장된 이미지의 경험과 시간성은 고속도로를 그린 (2023)와 같은 시리즈에서 더욱 선명하게 목격된다. 여기서 고속도로는 자체로 일상의 익숙한 풍경이지만, 동시에 시간과 공간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장소(아닌 장소)이다. 너무나 익숙하고 반복적인 풍경이며,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압축하는 동시에 무효화 하는, 자체로 복잡한 시간적 구조를 내포하고 장소이다. 작가는 장면을 단순히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그치지 않고, 안에 내재된 일시성, 반복성, 그리고 무/시간적 이동을 회화적으로 풀어낸다. 작가는 일종의 스냅사진을 다시 물질화하고 숙고의 대상으로 재탄생시키듯, 화면에 반복적인 붓질을 더해간다. 이현우의 회화는 얼핏 사진을 보고 그린 것처럼, 그러니까 재현의 의도를 우선으로 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회화는 형상에 완벽히 봉사하지 않는, 거친 붓질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게 이미지 대상은 붓질과 함께 아득한 무언가로 재구성된다. 작가의 회화는 대상을 상대화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가진 상대성과 속에 잠재된 이미지적 전환과 확장의 가능성을 고민한다.

여기서 대상, 재현을 초과하는 붓질은 자체로 감각적인, 사유에 가까운 경험으로 전환된다. 결국, 이현우의 회화는 지나치는 시간과 공간의 질료를 회화적으로 마주하며, 속에서 다시금 의미를 추출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으로서, 일시성과 평범함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늠하는 시도로 독해된다. 정조준하지 않은 이미지, 분명한 서사와 재현을 초과한 붓질은 (2024) 시리즈에서처럼 패턴과 구조물을 강하게 드러내며 일종의 추상회화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반복적인 패턴과 형상화된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 시각적 리듬과 추상성을 탐구하는 보인다. 실제 작업은 대상에서 이탈해 반복적인 파형(혹은 물결)을 연상시키며 관찰자의 시선을 시각적 리듬과 미세한 긴장감으로 이끌고 추상적 감상을 만들어낸다. 이는 불균형과 의도적 왜곡을 통해 시각적 흥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이현우의 작업은 이미지의 재현과 재구성을 반복해 새로운 시각/ 감각을 탐구하며, 형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어 관객들에게 시각적 유희를, 자유로운 해석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현우의 작업을 단순히 ‘익숙한 대상의 추상성에 대한 탐구’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그의 작업은 추상적 표현을 넘어서, 구체적이고 반복적인 형상 속에서 감각적 경험과 시각적 긴장을 이끌어내는 시도로 해석되어야 한다. 작가는 형상을 단순히 제거하거나 왜곡하는 방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감각을 유지한 이를 다른 시각성으로 변환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이와 관련해, 작가가 회상한 선생님과 대화를 떠올려본다. 작가는 화면 전체에 문을 그렸고, 그의 선생님은 “결국 너는 문을 지울 없지”라고 말했다. (여기서 회화를 말하는 선생님과의 추억/기억은 자체로 회화적이다.) ‘문고리를 지우지 못하는 작가’라는 표현은 이현우의 작업에 대한 중요한 은유적 해석을 제공하는 듯하다. 표현은 작가가 현실의 구체적 형상을 단순히 지우거나 소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을 미세하게 재조정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작업에서 문고리는 단순한 장식적 요소가 아닌, 현실과 이미지를 연결하는 장치로 작가의 작업이 지닌 미묘한 경계와 전환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작가의 작업은 관람자가 단순히 시각적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형상이 환기하는 현실의 단서를 통해 새로운 감각적 경험으로 이끄는 회화적 시도로 있다. 화면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붓질은, 그를 통해 부각되는 일종의 패턴은 일정한 규칙성을 지닌 추상적 리듬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 발견되는 미세한 붓질의 흔적, 색조의 차이, 경계의 미세한 오작동은 관람자의 시선을 화면 곳곳으로 유도한다. 이러한 방식은 정제된 패턴이나 추상적 표현에 머물지 않고, 형상 자체의 구체성을 통해 회화 이미지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자리한다. 결국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이현우의 작업의 붓질은 회화적 탐구를 막연한 해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이를 변형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적 경험을 창출하는, 어쩌면 지극히 구체적인 그리기의 시도라고 있다. 과정에서 작가는 현실과 이미지, 사진과 회화 사이의 미세한 경계를 탐색하며, 경계를 넘나드는 시각성을 조직하는지도 모른다.